Mohawk College 졸업생: 김진형 (Jin)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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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 (Jin)의 유학경험담

 
이렇게까지 인생이 바뀔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엔 외숙모의 권유로 영어만 잠깐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훈련병 시절, 에드먼턴에서 왔다는 형의 이야기도 그저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머나먼 이야기였습니다. 돈이 많겠지, 어렸을 적에 이민을 갔겠지 하는 생각에 그치고 저는 묵묵히 군생활과 전역 후 복학할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복학할 때까지 시간 좀 있다며? 한 6개월 만이라도 여기서 영어 하다 가.”

 

캐나다에 사시는 외숙모는 그렇게 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셨습니다. 전역 3개월을 남겨두고 새벽에 일어나서 부대 독서실에서 매일같이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영어 일기를 쓰고, 취미로 써둔 소설을 영어로 바꿔보기도 하고 영어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캐나다에 처음 가던 그 날, 2010년 3월 8일, 얼마 안되는 제 짐과 친척들에게 받은 외숙모께 전해드릴 짐을 가지고 비행기에 올라 탔습니다. 밴쿠버로 가는 도중에 몇몇 유학생을 만나 얘기도 듣고, 같이 학생비자를 받아 각자의 목적지로 흩어졌습니다.
캐나다에 도착하니 새로운 시작이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습니다. 한가지 결심한 것은, 자신을 바꾸겠다고 한 것입니다. 내성적이고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던 과거를 버리고 여러 나라의 사람과 왁자지껄, 혼자 놀 시간도 없이 바쁘게 지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과거의 나를 모른다” 고 되세기며 귀찮음을 이기고 친구를 만나러 다녔습니다.

 

원래 영어를 배우려고 했던 해밀턴의 모학 컬리지는 학기가 5월에 시작이었기에 2개월 간 St. Charles 라는 기술 교육 기관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쯤 지나서야 선생님 말에 집중을 안하고도 들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레벨 테스트를 보고 반이 바뀌자 다시 한 달동안 열심히 집중해야 선생님 말이 겨우 들렸습니다.
5월이 되어 모학 컬리지 영어 수업을 시작하였고, 역시 컬리지는 달랐습니다. 체계적이고 다양한 활동과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나름 열심히 해서인지 ESL 최고반에서 영어를 시작하였고, 8월이 되어서 영어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던 중 저는 ESL 최고반을 졸업했기 때문에 이제 9월 전공을 바로 들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게되고, 아까운 기회를 놓치기 싫어 캐나다의 진짜 컬리지 전공을 들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에 한 학기만 듣고 가려던 것이 두 학기, 세 학기가 되었고 제가 공부했던 서울의 한 대학교로 돌아갈 생각이 점점 없어졌습니다.
캐나다가 좋아지고 점점 여기서 살 생각이 들면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지만 여러가지 걱정도 많이 들었습니다. 군대를 전역하고 온 남자가 많이 없었고 어렸을 때부터 캐나다에서 자란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어떻게 될지 항상 불안했습니다. 비슷한 상황인 사람이 있으면 어느정도 예상을 할 수 있을텐데 그런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학 연수로 잠깐 와서 재밌게 놀다 가는 친구들을 보고, 헤어질 때마다 그냥 한국 돌아가는 게 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든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는 모국을 놔 두고 외국에서 제한적인 권리로 무리해서 살아갈 필요가 있나 싶었습니다. 제가 만약 내전 중이거나 굉장히 살기 어려운 나라에서 왔다면 모르겠지만 그래도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왔기 때문에 더 고민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어디든 상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이라도 한국에서 노력을 안하면 힘들긴 마찬가지이고, 남의 나라인 캐나다에서도 열심히 하면 충분히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제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결론 내리고 이 고민은 잠시 접어두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던 중 모학 컬리지에서 자랑하는 Co-op 이라는 시스템을 알게 되었고, 졸업 전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Co-op은 돈을 받고 대우도 일반 직원과 거의 비슷한 대신에, 서류 전형과 면접 등 취업 과정도 비슷하게 힘들었습니다. 다른 모든 대학생들과 경쟁을 해야 했고, 대부분 경쟁률이 10:1 이상이었습니다.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몇몇 회사에 지원했지만 면접 후에 연락이 없었고, 결국 생각한 것이 조금 떨어진 위치의 대기업 홈페이지에서 직접 지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경쟁이 더 치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제가 생각한 유학생의 경쟁력 중 하나는캐나다 어디든 일 하러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집과 가족이 있는 캐내디언들은 집 근처에서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에 내린 결론이었지요.

그렇게 2012년 1월 2일, 제가 처음으로 캐나다에서 일을 시작한 날이 왔습니다.Co-op을 워털루에 블랙베리로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인데요, 아무 회사가 아닌 캐나다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에 취직하여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블루베리라며 어떤 회사인지도 모르셨지만요.

 

한국에서도 회사 생활을 해본 적은 없지만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되든 안되든할 일을 다 하면 집에 보내고, 일을 위한 인생이 아닌 인생을 위해 일을 한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모두들 처음 들어온 저를 쉽게 보지 않고 반가워 해주었고, 서툴다며 혼을 내기 보다는 서투니까 더 가르쳐주려고 했습니다.
8개월 간의 신기한 경험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저는 한동안 정신을 못차렸습니다. 일하는 재미를 너무 푹 느껴버려 공부하는 방법도 잊어버렸기 때문이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차츰 다시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2013년 12월 저는명예 졸업자가 되었습니다.

 

졸업 전 학교에서 짬짬이 일을 하던 저는 향후 저에게 캐나다의 어머니같은 분과 일을 하게 되고, 그 분의 추천으로 졸업 후 잠깐의 공백도 없이 2014년 1월 2일,모학 컬리지 유학생 접수 부서에 취직하게 됩니다.

첫 날 소개를 하는데 모두 제가 학교 들어왔을 때부터 봐왔던 분들이라 신기했습니다. 저에게 그렇게 친절하게 캐나다 생활을 알려주고 모학 컬리지에 있도록 권유했던 분들과 바로 옆에서 일하게 되다니요. 그리고 불과 1-2년 전의 저처럼 사무실에 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학생들을 보면 저도 깜짝깜짝 놀랩니다.저도 저들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지금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원이 되었으니까요.
블랙베리에 취직한 2012년 이후로 모든 생활비와 학비를 스스로 해결하는 제 자신을 보면 가끔 뿌듯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한국에 그대로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취직 걱정, 돈 걱정 하는 친구들을 보면 가끔 저게 제 얘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정말 꿈처럼 생각했던 영주권 취득도 얼마 남지 않아 보입니다. 일치감치 독립해서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 만난지 오래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이 지금 이렇게 좋은 결과물을 낳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있고, 최선을 다하면 무슨 일이든 이겨낼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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