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교육 이야기 저자, 박진동님의 유학이야기 5

한국과는 개념이 다른 캐나다 초중고 교육

 

마라톤에선 초반에 전력질주하지 않는다.

 

마라톤 경기를 보면 출발 신호가 울리고 많은 선수들이 뛰기를 시작하는데 빨리 뛰는 선수가 없다. 경기임이 분명한데 선수들 간에 앞서가겠다고 경쟁하는 모습이 안 보인다.  다들 전력질주하지 않고 묵묵히 뛰기만 한다.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런 모습을 의아해 하지 않는다.  마라톤은 결국 선수의 심폐 능력과 후반부 자기와의 싸움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마라톤 경기에서 몇몇 선수가 시작부터 100m 달리기 하듯이 전력질주해서 다른 선수들 보다 저만큼 앞서 간다면 이를 보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저 선수들이 제정신인가?’ 또는 ‘쟤들 초짜들인가 보다…’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 코치들이 자신들의 선수가 선두그룹에 있는 것을 보고 환호하며 주변에 ‘쟤들이 내가 키운 선수들이다.’라고 자랑을 하고 있다면 어떨까? 그 코치들을 마라톤이 뭔지도 모르면서 선수를 지도하고 있다고 쑤군대지 않을까? 물론 그 코치들을 부러워하는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도 있고, 앞서가는 선수를 따라 뒤질세라 빨리 쫒아가는 선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좋은 성적을 못 낼 것이라는 것을 안다.

 

승자를 가리는 운동경기와 교육을 비교하는 것이 적합하지는 않지만 한국과 캐나다의 다른 교육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마라톤을 예로 들어본다. 캐나다의 교육은 정상적인 마라톤 경기 분위기이고, 한국은 처음부터 전력질주해서 남보다 앞서가는 선수들에 당황하며 너도 나도 빨리 뛰려고 초반 질주가 벌어지는 황당한 마라톤 상황이다. 한국의 교육제도가 초반부터 전력질주해서 남보다 앞서 선두 그룹에 들어가야 유리하게 되어 있고, 공부가 시험대비 훈련에 집중되어 있어 그런 훈련을 잘 받은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가기 때문에 초반부터 빨리 뛰지 말라고 코치하기도 어렵다. 빨리 뛰는 선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 선수에게 유리한 제도가 문제고 그런 제도에서는 지쳐 탈락하는 자가 많고 우수 기록이 나오기 어렵다. 그러나 캐나다의 교육은 마라톤 본연의 모습처럼 초반질주나 남과 비교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 묵묵히 제 능력에 맞춰 뛰다보면 능력 있는 학생은 결국 좋은 성적을 내게 되어 있다. 때문에 초중고 시절에 공부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캐나다에 초중고 연령대에 조기유학을 오는 학생이나 그 부모는 그런 교육 분위기를 먼저 알아야 한다.

 

캐나다 학교의 성적표에는 등수(등급)가 없고 과목마다 학생의 점수와 학급의 중간 점수(Class Median)만 보여준다. 학생의 과목 전체 평균 점수도 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아이는 대충 눈치로 짐작 할 수 있지만 급우들 간에 누가 더 공부를 잘하는지 알기 어렵다.  과목 한두 개 점수를 물어보고 알 수는 있지만 모든 과목을 물어보고 평균을 내 보기는 좀 어색한 일이라 남과 내 성적을 비교해 보기 어렵다. 자기 점수를 친구에게 말하지 않으면 그 아이가 공부를 얼마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구나 고등학생이 되면 개별적으로 과목을 선택하므로 친구들끼리도 과목 한두 개가 다른 것이 있어 점수를 모두 알아도 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친구의 점수에 호기심을 가질 수는 있지만 내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상위권 학교로의 진학을 포함해서 어디서도 등수로 비교하는 일도 없고, 점수 1, 2점 차이가 당락을 결정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친구의 성적에 관심이 별로 없다. 11년간 같은 학교를 다니고 제일 친한 친구라고 하는 앞 집 아이들이 공부 잘하냐고 12학년 아들에게 물어봤더니, ‘몰라요’라는 대답뿐이다. ‘어떻게 11년을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모를 수가 있니?’라고 하니 ‘같이 듣는 과목이 없어요.’한다. 할 말이 없다.

 

학교에서 같이 생활하는 아이들끼리도 서로의 성적을 모르는데 부모가 다른 집 아이의 성적을 알리가 없다. 다른 집 아이의 성적이 아니라 내 자식의 성적도 등수가 없어 어느 수준인지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간에 ‘뉘 집 아이는….’으로 시작되는 수다도 없고 자식 공부 잘한다고 자랑하는 부모도 보기 힘들다. 등수가 없는데 평균 90점 받았다고 자랑할 것인가? 그것이 상위 성적인지 중상위권인지 모르니 자랑이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엄마 친구 아들 철수는 중간고사에서 1등을 했다더라.’며 아이들 열 받게 하는 엄친아 이야기도 없다. 아이들에게 게임 그만하고 공부하라는 말을 할 수는 있지만 ‘5등 안에’, ‘10등 안에 들어라’ 식으로 구체적인 등수로 아이를 채근하지 못하니 공부잔소리의 강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모두 주관식인 시험에서 100점 받으라고 채근 할 수도 없고 90점 받으라고 할 수는 있지만 80점 받은 아이가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면 그만이다. 더구나 숙제도 성적에 반영이 되고 영어(국어) 과목은 발표점수도 들어간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알랑방귀 뀌는 놈에게 점수를 잘 준다’라든가 ‘평가가 공정치 못해 자신이 부당한 점수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평가 기준이 세밀하게 미리 알려져 있어 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아이 발표 점수를 왜 낮게 줬는지 선생님에게 항의를 하거나 미리 가서 돈 봉투를 내밀 수도 없는 일이다. 등수가 없어 경쟁이 없는 교육 환경은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의 소지를 주지 않는다.

 

캐나다 아이들은 자기가 해야 할 공부를 할 뿐이지 남보다 더 잘하기 위해 공부하지 않는다. 지금 해야 할 공부만 하면 됐지 내년 또는 내후년에 해야 할 공부를 미리 (선행학습) 할 이유가 없다. 한때 공부를 등한시해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해서 크게 걱정할 일도 없다. 나중에라도 열심히 해서 따라가면 된다. 남에게 뒤졌다는 의식도 없고 해야 할 공부의 양이 그리 많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캐나다 초중고 학생들은 공부를 많이 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도 그저 학교에서 수업 잘 듣고 숙제 꼬박꼬박 해 가고 시험 때 약간의 복습 정도 하는 것이 전부다. (특별 프로그램은 과제물이 많아 밤 늦게까지 공부나 숙제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시험문제들이 암기해서 답을 맞히는 것이 거의 없으므로 배운 것들을 다 이해하고 있는 학생은 시험 때마저도 할 것이 없다고 빈둥대기 일쑤다. 밤 12시만 되면 게임 그만하고 자라는 나와 언쟁을 하던 아들이 말 안 해도 일찍 자는 날이 있다. 바로 내일 시험 보는 전날 밤이다. 충분한 휴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드러내놓고 게임을 할 수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게임하고 있을 때 마다 지나가며 ‘숙제 다했니?“라며 불편함을 드러내는 나에게 ’없어요.‘라며 당당히 게임하는 아들이 시험 전날만큼은 눈치가 보이니 자는 것이 속편한 것이다. 이렇게 캐나다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열심히 공부 하는 한국 분위기와는 달리 공부외 취미활동을 마음껏 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비싼 돈 들여서 유학을 온다. 의문이다.

 

나는 그 분들에게 묻고 싶다. ‘공부를 열심히 안하는 나라에 아이를 보내 어쩌실려고…?’ 이 질문이 당황스럽다면 캐나다가 왜 교육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는지를 다시 알아보실 필요가 있다. 반면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을 하실 수 있는 주관이 뚜렷한 분이라면 이미 캐나다 교육의 특성을 잘 아시는 것이고 오셔서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는 분이라 생각된다. 캐나다에 와서 공부 열심히 안하는 (안 가르치는) 분위기에 실망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다. 교육 선진국이라는 말 만 믿고 와보니 영~~ 아니더라는 실망과 후회가 있을 수 있다. 유명 사립학교에 보내고 당연히 잘 될 것이라 기대했다가 결과에 실망하기도 한다. 캐나다의 좋은 교육을 활용 잘하고 못하고는 부모의 역할에 달려있다.

 

공부는 동기부여가 잘 되어 있어야 열심히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경쟁 체제 때문에 외부 자극에 의해 동기부여가 많이 된다. 남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나 ‘1등을 하겠다’ 또는 ‘명문대를 가겠다’는 승부욕 등이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개인의 특성이나 진로를 생각하기에 앞서 무조건 열심히 하고 성적에 맞는 학교나 전공을 택해서 갔다가 뒤늦게 본인이 원하는 것과의 괴리를 깨닫게 되어 곤란해지기도 하지만 동기부여만큼은 확실하다. 그런데 캐나다에는 그런 경쟁이 없다. 학생들은 무엇으로 동기부여가 될까? 그것을 알면 캐나다에서의 자식 교육은 반 이상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정통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지금까지 깨달은 바로는 ‘나 이거 잘해!’하는 능력과 흥미가 통합된 자신감이다. 그것을 찾아주고 북돋아 주는 사람이 바로 부모다.

 

캐나다에서는 부모가 아이의 능력과 관심을 잘 파악해서 먼 미래를 보고 안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능력에 상관없이 ‘하면 된다.’라는 한국식 사고를 버려야한다. ‘하면 된다’는 공부가 훈련으로 되는 수준까지만 가능하다. 대학 입학까지가 공부의 최고 목표라면 그런 전략도 나쁘진 않다. 그렇지만 캐나다에서는 대학 입학이 ‘이제 공부를 제대로 해보자’고 시작하는 것이므로 배움에 대한 능력과 흥미가 없으면 잘하기 힘들다. 그 능력과 흥미를 파악하는 과정이 초중고 과정이고 그것을 알고 안내를 해야 할 사람이 부모다. 부모가 그것을 잘하려면 우선 자식의 미래 목표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욕심은 항상 눈을 가리게 되는 법이라 내 자식의 능력과 관심사도 못 보게 만든다.

 

마라톤에서는 등수에 상관없이 완주하겠다고 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1등을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3시간 내에 완주 한 것을 기뻐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5시간대에 완주한 사람과 응원단들이 1등보다 더 환호하는 경우도 있다. 내 자식이 좋은 기록을 못내도 열심히 뛰어 준 것만으로도 부모가 기뻐해 준다면 어떤 아이가 열심히 안 뛰겠는가?

 

캐나다에 유학을 보내거나 함께 오는 부모가 준비해야 할 것은 높은 목표를 세우고 명문 학교를 찾아 진학 전략을 짜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의 능력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그것을 후원해 주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캐나다에서의 성공 전략은 자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자녀들이 느낄 때 그것이 가장 큰 동기부여고 학업에 대한 원동력이다.

 

다음에 연재될 글은 ‘3가지 수준으로 나뉘어 있는 고교 학급’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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