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교육 이야기 저자, 박진동님의 교육 이야기 8

사립고교를 가야 할 이유와 갈 필요가 없는 이유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한국 사람들은 경제적인 여유만 좀 있으면 사립학교를 선호한다. 미국에서는 명문대에 진학하려면 사립 고등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관념도 일반화되어 있다. 공교육이 거의 무너졌기 때문에 명문대 진학이 아니더라도 학교다운 고등학교를 다니려면 사립학교를 다녀야 한다. 중상류층 거주 지역을 제외하고는 공립학교는 대학 진학 의지가 없는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쯤으로 치부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식교육에 열성을 다하는 미국 교민들은 학비 부담이 많다. 미국 정치와 교육계에서는 공립교육 부활이 교육개혁 화두다. 공교육에 학생을 보내는 학부모들의 교육열 고양이 하나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오바마 대통령은 수시로 세계 최고의 교육열 (교육제도가 아니라 교육열만)을 보이는 한국의 교육계를 사례로 제시한다. 필자는 미국이 공교육을 살리려면 한국의 교육열을 부러워하기보다 캐나다 교육 제도를 따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은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공립학교가 주류였다. 외국어 교육을 표방하며 한두 개씩 생겨나던 외국어고교가 이제 30개를 넘었고 과학고와 함께 수능시험 상위 랭킹을 모두 점령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을 모방하여 자율형사립고라는 것도 만들어 졌다. 사교육을 대체 할 수 있는 훌륭한 고교를 만든다는 이유지만 공교육이 망가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중상류층 학부모들의 요구만을 충족시키려는 정책이다. 좋은 사립학교라는 것이 좋은 건물에 훌륭한 교사들만 있으면 되는 사설 학원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준비된 커리큘럼 없이도 우수한 교사가 자율적으로 가르친다고 우수한 교육이 된다면 누가 교육문제를 걱정하겠는가? 몇 년이 지난 지금 언론에 나타난 자사고 비판을 보면, 중상위권 학생이 빠져나간 공립학교는 쭉정이처럼 되어 교육이 더 힘들어지고 자사고는 고급 입시학원이나 다름 아닌 상태가 되어 가면서 그런 학교를 왜 만들었지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한국은 사립고가 교육계를 평정했고 학부모나 학생이나 성공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사립고를 가야 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당연히 캐나다와 북미에 유학을 오는 학생과 학부모는 사립고를 더욱 선호하게 되어 있다.

 

캐나다에는 사립학교가 많지 않다. 공교육이 탄탄하게 잘 운영이 되므로 공짜인 공립학교를 놔두고 기숙사에 안 들어가도1년에 1만 ~ 5만 달러 (1천만 원 ~ 5천만 원)의 비용이 드는 사립학교를 일반인들이 보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립학교는 상류 부유층들이 다니는 학교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한 사립학교에 일반인들은 보낼 엄두도 못 내지만 경제적으로 성공한 한인들은 자녀들을 보내기도 한다. 간혹 경제적 능력에 상관없이 성적이 우수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사립학교에 다니게 된 한인 학생들도 있어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학비가 비싼 사립학교들은 학교 수준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우수한 학생을 장학금으로 유치한다.) 대부분의 한인들이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내지만, 여전히  ‘사립학교=우수학교”라는 관념이 있어 무리를 해서라도 사립학교를 보내는 사람도 있고 자녀에게 사립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 보지는 않았지만 유명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돌봐주면서 간접 경험을 해 본 일도 있고 캐나다 교육 전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 사람으로서 사립학교에 대해서도 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사립학교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고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로 구분하고자 한다.

 

  • 고등학교 졸업자가 갖추어야 할 지식 – 고교 1,2학년 과정, 수능과 관계없는 과목들, 주요과목에서도 수능을 염두에 두지 않은 평균 수준의 지식들
  • 대학입학 시험 (지원)을 위해 배워야 할 지식 – 수능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기 위한 학습
  • 대학의 수준 높은 학문을 잘하기 위해 예비지식 – 언어와 수리에서 대학교 1,2학년 수준의 깊이 있는 학습 이 3가지는 서로 중첩되어 있다.

공립 고등학교는 A와 B를 주요 교과과정 (Curriculum)으로 한다. 교육청을 중심으로 교과과정이 만들어져 교과서와 교육지침, 평가시스템 등이 갖춰져 있다. 그런데 학생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므로 중간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을 해야 하기 때문에 중상위권 학생들에 대한 B 교육이 약하다. 한국에서는 그것을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사교육이다. 미국에서는 사교육이 아닌 사립학교가 그것을 대체한다. 그 사립학교들은 B와 C을 중심으로 한 교과과정을 가지고 교육한다. 미국의 명문대학들에서는 대학입학후의 학업성취도를 염두에 두고 C교육의 내신 성적을 입학사정에 많이 반영한다. 미국의 교육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미국에 사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필자가 추정하기로는, 미국에서 사교육 (사설학원)이 한국처럼 발달하지 않고 사립고교가 발달한 주된 이유가 학원에서는 C 교육을 할 수 없고 학생들이 혼자 학원가기 쉽지 않은 교통의 불편함 때문인 것 같다. 미국 대학들이 C교육에서의 성취도를 입학사정에 반영하지 않고 SAT의 비중을 높이면 아마 미국도 입시 학원이 급격하게 많아질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학입학 자체만을 중요시하므로 C 교육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수학 능력 평가에 촛점을 둔 B교육이 대학 교육을 준비하는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B에 있어서 최고의 성취도를 나타내는 한국의 우수 학생들 중에서 미국의 SAT를 만점 받아 미국 명문대에 직접 진학하는 학생들의 상당수가 제대로 졸업을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좋은 사립고는 명문대 진학률만이 아니라 그들이 명문대를 우수하게 졸업하고 사회 진출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학교들이다. 그 배경이 교육 C에 있다. C는AP와 IB 프로그램을 말한다.
사립학교들이 우수한 이유는 AP나 IB를 교과과정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www.ap.ca 또는 www.ibo.org 에서 그 프로그램을 채택하고 있는 학교들을 찾아보면 캐나다의 거의 모든 사립학교들이 다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내 최고의 사립고교로 알려진 Upper Canada College (좋은 고교에는 College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IB Program을 교과과정으로 하는 학교다. 재정이 좋은 사립학교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독자적인 교과과정까지 만들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교과과정이라는 것이 제 아무리 훌륭한 교육자라도 한 두 사람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교과목 관련 교수들과 교육학 교수들이 조직되어 수년간의 연구를 통해 만들고 수십 년간 다듬어 지면서 훌륭한 체계가 갖추어 지는 것이다. 한국도 이제 수많은 사립학교들이 있지만 그러한 잘 체계화된 커리큘럼 없이 기존의 교과 체계를 가지고 입시 성적 높이기에만 치중되어 있어 사실상 입시전문 학원에 다름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사립학교 학생들이 공부는 훨씬 더 많이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학문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북미의 사립고에 비해서는 경쟁력이 다소 떨어진다. 우수한 교육은 당장 시험 성적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대기만성을 위한 기초다지기와 탐구 훈련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대학에 진학해서 높은 학업 성취도를 이룰 수 있도록 교육을 잘 시키는 사립고교에 보내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에게 꼭 추천할 수 있는 선택이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이 이유라면 캐나다에서는 돈을 많이 들여서 사립학교를 보낼 이유가 없다. 공짜인 공립학교에서도 AP와 IB를 채택하여 수준 높게 가르치는 학교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공교육에서는 위의 A, B, C 과정을 자율 선택 하에 모두 제공하고 있다. 수능이나 SAT와 같이 표준입학시험이 없으니 우수학생들이 B교육과정에 불만이 있을 수 없다. 중간에 초점을 맞춰 가르치면 우수학생은 좋은 성적을 받을 것이고 그 내신 성적으로 원하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수준이 좀 낮다거나 대학 진학 후를 대비하고자 한다면 AP나 IB를 선택해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적어도 캐나다에서는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우수하다거나 명문대학 진학에 유리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이 사립학교에 갈 필요가 없는 이유다.
캐나다에서는 공부에 관한한 사립학교가 더 우수하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사립학교를 보낸다. 그 이유는 유유상종하고 (끼리끼리 어울리고) 싶기 때문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녀들이 좋은 교육환경에서 비슷한 분위기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공부하고 그 친구관계를 미래에도 지속하기 원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더 능력 있고 좋은 환경을 가진 사람들과 인맥을 만들고 싶어 하므로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립학교에서는 비슷한 부류의 학생들이 만나 좋은 인맥 (친구관계, network)을 만들고 대학을 거쳐 사회에 나가서도 서로 돕는 인맥 관계를 유지한다. 사립학교를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어쨌든 사립학교에 가면 우수한 교육도 받고 미래의 사회생활에 큰 밑천이 될만한 좋은 인맥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다.
사립학교에서 학생들 간의 인맥은 부모의 인맥을 따라간다. 사회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부모들이 이미 서로간의 인맥이 있기도 하고 학교 기금마련 행사 등을 하면서 같은 학교의 학부모로서 새로운 인맥을 만들기도 한다. 북미에서는 친구관계가 가족 간의 교류를 통해서 만들어지거나 관계가 더욱 공고히 되는 경우가 많다. 이민자인 필자의 아이들도 가장 친한 친구들은 주말에 자주 만나 바베큐도 같이하고 여행도 같이 다니는 가정의 아이들이다. 캐나다의 가정들은 대체로 가족 전체가 어울리면서 부모끼리 친구이자 자녀들 간에도 친구인 경우가 많다. 사립학교의 경우도 학부모들끼리 이미 서로 잘 아는 사이들이 많다고 한다. 명문사립고 일수록 부모들이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도 많고 상류층들이다. 부유함의 수준이 자녀의 생일 선물로 스포츠카를 사주기도 하고 승마가 취미라서 별장에 여러 마리의 말을 키우는 정도다. 명문사립고에 다니는 한인 학생들이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사립고에서 자녀들이 이들과 인맥을 잘 만들려면 부모인 본인도 그 부모들과 교류를 하며 지낼 수 있어야 한다. 가끔은 주말에 본인 집으로 바베큐파티 초대도 하면서… 그 정도가 안 되면서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은 공연히 자녀들의 기만 죽이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필자 생각엔 청소년기에 마음속에 배양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미래의 성취를 위한 자신감이다. 자녀에게 좋은 학교 환경을 제공하고 좋은 집안의 자녀들과 친구 맺기를 할 수 있도록 하려다가 정작 중요한 ‘자신감’을 잃게 할 수도 있다. 사립학교를 선택할 때는 그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상의 이야기는 캐나다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유학생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캐나다의 사립고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하므로 알아 둘 필요가 있지만 사실 유학생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우선 유학생은 공립학교에 다녀도 학비를 많이 내야한다. 일반 사립고와 비교해 비용에서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학비와 기숙사비가 훨씬 비싼 명문 사립고와는 차이가 있다.)  또한 사립고의 기숙사비나 공립고 다니면서 홈스테이하는 것이나 엄마가 따라와 아파트 얻어 함께 사는 것이나 비용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비용의 관점에서 사립고 보다 공립고를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둘째로 과외 활동이다. 캐나다나 미국의 대학 입학에서는 과외활동 (예체능 활동과 클럽활동)과 봉사활동을 중요시한다. 사립고에서는 그런 것들을 학교에서 잘 챙겨준다. 학교에 그런 특활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놓고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해 활동하게 하고 교사들이 지도를 잘해 준다. 반면 공립고에서는 모두가 학생들 자유다. 결국 학생이 좀 똘똘해서 잘 챙겨서 하든지 부모가 잘 인도를 해 주어야 한다. 부모가 그럴 입장이 아니거나 그것에 자신이 없는 경우에는 사립고에 맏겨 놓는 것이 좋다.
세째로 사립고에 가면 좋은 대학에 더 쉽게 가게 될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다. 좋은 사립고 일수록 초중등 성적과 SSAT시험성적으로 우수학생을 입학시킨다. 학비만이 아니라 성적도 우수해야 들어 갈 수 있다. 우수학생들을 뽑아 놓으니 자연히 대학 입학 결과가 좋을 것이다. 그런데 캐나다의 대학은 내신 성적으로만 뽑는다. SAT를 보는 미국의 대학들도 내신 성적을 많이 반영한다. 특히 AP나 IB 성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립고에서 많이 채용하는 IB프로그램의 성적은 전 세계 IB학생들이 공통 시험을 보고 상대평가를 하며 졸업 필수로 4000단어 이상의 탐구형 작문 등도 제출해야 한다. 학교 시험이든 외부 시험이든 대부분 주관식 서술형이 많다. 이러한 평가에서는 우수한 학생이라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유학생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고 내신 성적을 좋게 못 받아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차라히 공립고나 일반사립고의 일반 교과목으로 배우고 뒤떨어지는 학생들과 함께 평가 받아 좋은 내신 성적을 받는 것이 대학 입학에서는 유리할 수 있다.
수능시험이 지배하는 한국에서는 사립고나 특목고를 가는 것이 무조건 유리하지만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현지인이라면 명문 사립학교 다니는 것을 부러워 할 이유가 별로 없다. 다만 유학생이라면 학생 개개인을 잘 돌봐주는 사립학교에 가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자녀 지도 능력 그리고 학생의 학습 능력 (특히 영어 작문) 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길을 선택하면 그것이 바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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